[창간 15주년 특집] 코로나시대 한인 관광업계 “한치 앞도 보기 힘들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속에 있는 느낌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산업은 단연 여행, 호텔, 항공 등 관광산업이다.

미주 지역, 그 중에서도 남가주 한인관광업계는 한국인의 미국방문시 관문 지역이라는 바탕에서 꾸준한 성장을 이뤘고 2009년 이후 10여년간 매년 두자릿수로 늘어나는 한국인 방문객 급증으로 인해 불패신화를 이뤘다. 그랬던 만큼 코로나19 여파가 더욱 힘들고 아프다.

미국방문한국인
미국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LA국제공항을 나서고 있는 이같은 장면을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시 볼 수 있을지…<헤럴드경제DB>

■ 현실 진단이 우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강력한 외부 요인으로 인해 올 1분기 말부터 사실상 개점 휴업한 한인 관광업계는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관광 수요가 다시 늘어나기 전에 업계의 실상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가 꾸준히 늘었고 1989년 한국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를 기점으로 삼으면 한국인의 미국 여행 시장의 역사는 30여년으로 볼 수있다. 통계상으로 보면 30여년간 증가폭은 소폭 줄었지만 매년 꾸준한 방문객 증가를 경험했다.

신종플루와 원화대비 달러가치 급상승,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더해진 이른바 트리플 임팩트로 업계를 힘들게 했던 2009년 한해에도 2008년 11월 시행된 한국인 대상 미국 무비자 입국 제도 시행으로 인해 방문객 감소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세계가 사실상 국외 여행의 빗장을 걸어 잠궜고 한국도 현재 국적과 관계없이 다른 나라를 방문한 모든 사람에 대해 2주간 격리를 강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 방문자 2주 격리라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해제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미국 방문 한국인 여행객은 찾아 보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또 매년 봄가을에 집중됐던 미국내 한인들의 고국방문 프로그램 역시 방문객 제한 해제 전까지는 상품 판매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 유럽 국가들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금씩 문을 열고 있지만 최근 확진자가 크게 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제한은 풀지 않고 있다. 현실을 굳이 나열한 이유는 한인 관광업체들이 판매하는 상품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을 중심으로 타 지역에서 미국을 찾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1주일 안팎의 일정의 패키지 투어인 ‘인바운드’수요가 한인 관광업계 매출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해 왔다.

현지 한인들이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유명 국가와 도시의 관광지로 향하는 ‘아웃바운드’매출도 비중은 작지만 한인 관광업계의 주요 매출원이었다.

점차 참여하는 규모는 줄고 각 방문지에서 현지 정서를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체험형 여행이 대세를 이뤄왔지만 한인 업계는 효율화만 강조한 나머지 40~50명이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대형 버스투어 패키지를 고집해 왔다.

규모의 경제만이 비용을 줄여 여러 한국내 거래처인 대형 여행사와의 거래관계를 보다 좋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효율화만 강조한 탓에 규정을 크게 초과, 하루 16~17시간에 달하는 무리한 버스패키지 투어 운영을 스스럼 없이 진행해 왔다.

한국내 대형 업체를 대상으로 한인 업체간에 무리한 고객 수주 경쟁을 펼치는 바람에 손해조차 감수하는 ‘역마진’ 경쟁도 로컬 한인관광업계의 비밀이 아니다.

이를 통해 적자 나는 부분은 현장에서 투어 가이드에게 과도하게 비용을 높여 옵션 투어라 불리는 유료 추가 관광 일정을 강요하거나 불필요한 귀국선물 용품 구매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삼호관광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들이 관광 가이드를 정규직원으로 채용하지 않고 ‘독립사업자’로 계약해 비용 절감을 꾀한 관행은 고질화됐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과 노동법 위반에 대한 소송위험을 항상 느껴야 하는 부담 속에서 미국을 방문한 여행객들은 단지 ‘돈벌이 수단’일 수 밖에 없는 폐단을 남겼다.

하지만 당장 규모의 경제를 통해 매출을 높이는데 급급했던 업계는 변화를 위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개별 업체 또한 업계 전체가 사실상 휴업 상태인 이 기간 가장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난날을 되돌아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와 현재 모습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없다면 코로나 사태 진정 후 크게 달라진 시장 환경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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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이후 관광산업은 여행 문화와 패턴의 변화로 예전과 다른 뉴노멀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헤럴드경제DB>

■관광, 사라질 2억개의 일자리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이미 한국 뿐아니라 전세계 관련 전문가들이 이후 상황에 대한 전망을 쏟아낸다. 모든 예상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매년 10%내외로 10년 넘게 성장했던 한국인들의 미국관광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 보편화되면 일정 기간이 지나 다시 예전과 같이 자유롭게 전세계 어디든 여행을 다니는 세상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 도대체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가늠하기는 말 그대로 ‘신(God)만 아는 일’이다.

빠르면 올 연말 백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지만 누구나 쉽게 백신을 맞아 이 질병에 대해 의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의 기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는 의료전문가들의 예상이 그나마 위안이다.

3월 중순부터 미국 내 각 지역별로 펼쳐진 자택격리 및 사실상 경제 봉쇄 정책이 차츰 해제되면서 거주지 주변 지역으로 향하는 여행 수요가 최근 크게 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런 흐름과 고사 직전의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국내 여행 활성화를 위한 연방 정부 차원의 지원금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집에서 50마일 밖을 여행하면서 소요된 경비를 세금공제해준다는 것과 같은 방안이 제시된다.

여기에 한인 업계의 가장 큰 바람인 1차 활성화에 대한 힌트가 숨겨져 있다.

집에만 갇혀 있던 미국내 현지 한인들 또는 타주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과거와는 다른 차별화된 여행 서비스 제공이 필요한 것이다.

일부 한인업체가 이런 점을 감안해 4인 이상 출발하는 상품을 출시했지만 일정을 보면 과거 대형 버스패키지 투어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단순히 투어에 참여하는 인원만 줄이는데 그치지 않고 방문지, 식사, 숙박 등 일정을 구성하는 전반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 현지 한인 대상으로 한 이런 변화가 성공적으로 안착된다면 이후 한국 등 해외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에 충분히 접목해 활용할 수 있다.

정확하게 예측하기에는 이르지만 여행문화에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믿어야 한다.

특히 보건 위생과 밀접한 식문화와 숙박문화는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숙박·식사·이동·현지에서의 특별한 활동 등을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이번 사태가 안정화된 이후에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택근무 보편화라는 달라진 고용 환경에 맞게 여행 역시 일과 접목된 이른바 ‘워케이션(work+vacation)’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준비하는 한인 업계라면 당연히 이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된다.워케이션이 가능하도록 일정과 공간이 제공돼야 새로운 매출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여행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2억개에 달하는 관광산업 일자리가 전세계에서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에 안주해 경비 절감에 따른 수익률 극대화라는 열매만 기다린다면 2억개의 일자리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여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모습만 바뀔 뿐이다.

이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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