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코로나 확산에 ‘혐’(嫌) 올림픽 기류…일왕 개막선언 문구도 바꾼다
코로나19 여파 일왕 홀로 개막식 참석해 개막 선언
주최측 여론 고려해 “축하” 표현 빼는 방안 검토 중
마스크를 쓴 일왕 나루히토. [AP]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오는 23일 도쿄 올림픽의 개막을 앞두고 일본 내 여론이 악화함에 따라 일왕의 개회 선언 문구에서 ‘축하’라는 표현이 빠질 것으로 보인다.

21일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해 긴급사태가 발효된 가운데 일본 내 올림픽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주최측이 일왕의 개회선언 문구에서 ‘축하’ 표현을 쓰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개최 조건 등을 규정한 올림픽 헌장은 개회 선언을 해당 국가 원수가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제의 태평양전쟁 패전 후에 새로 제정된 일본 헌법은 신격화돼 있던 일왕의 지위를 국가원수로 바꾸어 놓았다.

1964년 도쿄 하계대회, 1972년 삿포로 동계대회, 1998년 나가노 동계대회 등 일본이 과거에 유치했던 3차례의 올림픽에서 당시 일왕이 국가원수로서 개회를 선언했다.

현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조부인 히로히토(裕仁)가 1964년과 1972년 대회, 부친이자 상왕인 아키히토(明仁)가 1998년 대회의 개막을 알렸다.

이번 도쿄 대회에서는 대회 명예총재인 나루히토 일왕이 개회식에서 개막을 선언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문판 개회 선언 문구에 포함된 ‘셀러브레이팅’(celebrating·축하하며) 표현이 주최측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개회 선언에 정치적 의미가 함축된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선언 예문을 세부적으로 적시해 놓고, 행사 별로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히로히토는 1964년 도쿄 대회 때 예시문 속의 셀러브레이팅을 ‘이와이’(祝い·축하한다는 뜻)로 번역한 일본어 버전으로 “나는 제18회 근대올림피아드를 축하하며(祝い), 이에 올림픽 도쿄대회의 개회를 선언합니다”라고 했다.

이번에 나루히토 일왕은 개최 횟수만 제32회로 바꾸어 기존 개회 선언 문구를 읽는 것으로 끝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속에서 개최하는 올림픽이 축하할 일인지를 둘러싸고 일본 내에서 찬반 논란이 격렬하게 일면서 일왕이 국민 전체가 동의하지 않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왕실 전담 기관인 궁내청의 니시무라 야스히코(西村泰彦) 장관도 지난달 2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나루히토 일왕이 이번 올림픽 개최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을 헤아리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도쿄올림픽 개최를 일왕이 반기는 입장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도쿄신문은 이런 배경에서 일본 정부와 대회 조직위원회가 ‘이와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올림픽 개막식에 마사코(雅子) 왕비를 동반하지 않고 혼자 참석해 개회 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확산 등의 상황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1964년 히로히토는 일본에서 처음 열린 도쿄올림픽 개막식 선언을 하러 갈 때 나가코(良子) 왕비를 대동했다.

일본 보건당국은 앞서 12일 도쿄도에 코로나19 긴급사태를 발효했고, 이 조치는 다음달 22일까지 6주간 유지된다. 도쿄에 긴급사태가 발효된 것은 지난해 4~5월, 올해 1~3월, 4~6월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다.

올림픽 개막일인 23일부터 폐막일인 다음달 8일까지 올림픽 전체가 긴급사태 속에 진행된다.

긴급사태 발효 속에 올림픽을 강행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고조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 지지율은 지난해 9월 출범 이후 최저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70%가 넘는 지지율 속에 출범한 스가 내각은 16일 사상 최초로 지지율 30% 선이 깨져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의원내각제 체제인 일본에서는 내각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면 국정수행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간주된다.

일본의 내각 지지율이 20%대를 기록한 것은 가케(加計)학원 스캔들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내각이 흔들리던 2017년 7월 이후 4년 만이다.

교도통신이 17~1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7%가 “올림픽 개최로 감염 확산 관련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18일 도쿄 모토아카사카(元赤坂) 영빈관(아카사카 별궁)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환영 행사가 열리자 영빈관 주변에서는 올림픽 개최 반대 및 환영 행사 반대 시위가 열렸다.

일본 내 올림픽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도요타 자동차 등 올림픽 대표 스폰서 기업들마저 이미지 악화를 우려해 기업 대표의 개회식 불참 입장을 밝히는 등 올림픽과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다.

sooha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