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22일(현지시간)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파월 의장은 “경기 침체 가능성이 존재하며 연착륙은 매우 도전적일 일”이라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의 여파로 경기 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처음 인정했다. [AFP]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기록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금리를 빠른 속도로 인상하는 과정에서 경기 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공개 인정하고 나섰다. 연착륙이 힘들 수 있다는 발언은 그동안 해왔지만, 직접적으로 경기 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과 전쟁’이 연준의 최대 과제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추가적인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금리인상)’ 등의 고강도 긴축 정책을 지속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파월 의장은 22일(현지시간)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경기 침체 가능성이 존재하고 연착륙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라며 “우리(연준)는 경기 침체를 일으키려고 하지 않으며, 꼭 경기 침체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확실히 (경기 침체)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파월 의장의 발언은 일주일 전 발언보다 한 단계 더 세진 것이다. 그동안 피해왔던 ‘경기 침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며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막을 내린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은 “연준이 경제적 고통 없이 물가를 낮추는 연착륙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물가 급상승 국면에서 목적 달성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정도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여기에 그동안 파월 의장은 완전한 연착륙을 아니라도 “다소 부드러운 착륙(softish landing)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경기 침체에 선을 그어 왔었던 사실을 상기하면, 분명 이날 발언은 파월 의장의 입장이 다소 변화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파월 의장의 이번 발언은 경기 침체와 관련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인사들은 그간 경기 침체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6일 AP통신과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가 불가피한 일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인플레이션을 극복할 강력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 역시 “경제가 안정적 성장기로 이행하며 둔화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경기 침체가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폭적인 추가 금리 인상 등을 통한 ‘정면 돌파’에 나서겠다는 게 파월 의장의 생각이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잡을 것이라 강력히 약속한다”며 “가격 탄력성을 회복하지 못해 높은 물가 상승이 경제 전반에 퍼지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리 인상으로 금융 상황이 타이트해졌지만, 이는 적절한 것”이라며 “우리는 밀고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6월과 마찬가지로 7월 FOMC 정례회의에서도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연준은 지난 6월 FOMC 정례회의 직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 카드를 내민 것은 1994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이다. 다른 연준 고위인사들도 같은 날 고강도 금리 인상 기조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통화적 완화를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며 0.75%포인트 추가 금리 인상을 지지한다고 했고,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도 “난 50bp(1bp=0.01%포인트)에서 75bp 사이며, 최소 ‘빅스텝(0.5%포인트 금리인상)’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월가 경제 전문가들은 일정 부분 경기 침체까지 각오한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탓에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을 일제히 내놓았다.

씨티그룹은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을 50%로 상향했고, 골드만삭스도 전날 미국의 내년도 경기 침체 가능성을 기존 15%에서 30%로 높였다. UBS도 전날 미국이나 세계 경제가 내년이나 내후년에 침체에 들어서지는 않겠지만, 경착륙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신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