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때론 현실보다 판타지를 품은 드라마가 더 큰 감동과 위안을 주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한다. 배우 박은빈이 ‘최애’로 뽑은 마지막회 이 장면은 흰고래 무리에 섞여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외뿔고래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던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17%대 시청률로 지난 18일 막을 내렸다. ‘우영우’는 첫 회 시청률 0.9%로 출발해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2022년 최고의 화제작이라는 평가 속에 유종의 미를 거뒀다. 지상파도 이루기 힘든 10%대의 시청률을 찍은 ‘우영우’에 마냥 기쁠 것만 같은데, 종영 후 만난 박은빈은 이런 폭발적인 반응에 “솔직히 무서웠다”고 말했다.

“진정성 만큼은 자신있었지만 내가 모르는 감수성과 무지했던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봐주시니 부담이 됐다.” 그래서일까. 그는 메이킹 영상을 통해 마지막 촬영 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박은빈은 “배우로서 잘 해내야만 하는 장면이 많아서 끝날 때까지 모든 사력을 다한 작품이었다 보니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힘들었던 나날들이 쭉 스쳐 지나갔다. 오랜만에 결국 내가 잘 해냈구나 미묘한 감정이 들어 눈물난 거 같다”고 돌아봤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자폐인의 시각으로 사회를 그려내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간 자폐성 장애를 지닌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존재했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여성 주인공을 전면으로 내세운 설정과 자폐인을 단순히 보호받는 대상이 아닌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성에 주목하며 입체적으로 그려냈단 점에서 호평을 얻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우영우를 연기한 박은빈이 있었다.

출연을 여러 차례 고사할 정도로 25년차 배우 박은빈에게도 ‘우영우’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지난해 참여했던 KBS2 드라마 ‘연모’에 출연 전부터 섭외 제안을 받았으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 “‘우영우’는 다른 좋은 배우가 있다면 시청자로서 보고 싶다고 고사했는데 기다려주셨다. 솔직히 많이 부담됐다. 스스로 확신이 없었다. 쉬운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될 거 같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란 느낌은 왔지만 배우로서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암담했다.”

결국 박은빈은 “눈동자까지 연기한다”, “박은빈이라 가능했다”는 호평 속에 제작진이 끈질기게 박은빈을 설득한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냈다. ‘연모’를 마치고 ‘우영우’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2주 밖에 되지 않아 물리적인 어려움도 많았다는 그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실존인물을 모방하면 그분들의 실생활을 수단삼아 연기하는게 될까봐 영상 레퍼런스를 최대한 배제시키려 했다. 작가님과 감독님, 자문교수님께서 탄탄하게 대본을 구축해주셔서 그분들이 생각하시는 영우의 느낌을 만들어냈다”고 캐릭터 구축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허구성을 가진 드라마지만 워낙 민감한 소재인 만큼, 실제 자폐인의 모습과 드라마 속 우영우의 모습이 비교되며 드라마의 현실성에 대한 이야기가 대두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은빈은 “자폐 스펙트럼이란 증상의 구현에만 초점을 맞춰 연기하면 드라마 안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을 거 같아 드라마적인 허용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자폐인과 그 가족들에게 최대한 상처가 되지 는 방향이 어느 쪽일까를 제일 고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찾은 답은 우영우가 세상을 마주하고 어떻게 성장해나가는지 그 과정 속에서 거짓 없이 진실하게 연기하면 그 마음을 (대중이) 조금이나마 알아주시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임했다”고 강조했다.

좋은 반응을 얻어 뿌듯하고 값지지만, 한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는 박은빈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해외 팬들이 연락을 주시고, 친한 지인의 가족 중에 자폐인이 있단 걸 처음 알게 되기도 했다. 이런 분들이 내게 자폐인을 잘 그려줘서 고맙다거나 이 드라마를 보고 자폐인이 사람들의 말을 따라하는 반향어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 거 같아 고맙다고 해주더라. 이런 감동적인 말들이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인터뷰 내내 한결같이 밝은 미소를 짓던 그는 인터뷰 말미, 오랜시간 자신의 매니저로 곁을 지키며 함께 해준 어머니를 언급하자 눈물을 보였다. “15년 이상을 내 전담 매니저이시기도 했던 엄마는 내 모든 걸 알고 계신 분이다. ‘우영우’가 큰 사랑을 받아서 기쁘시지만, 엄마 만큼은 내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홀로 감내해야 하는 것들을 보셔서 짠해하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5세에 아역배우로 데뷔해 어엿한 성인 배우가 된 박은빈은 JTBC ‘청춘시대’, SBS ‘스토브리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KBS2 ‘연모’ 등 연이은 히트작 주연자리를 꿰차며 오랜 세월 갈고 닦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휴식을 취하며 차기작을 검토할 계획이라는 그는 ‘우영우’ 시즌2 계획에 대해선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후속작에선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확신과 자신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준비 기간이 필요할 거 같다”며 “구체적인 건 아무것도 논의된 게 없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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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나무엑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