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서워 떠나기로 결심"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러시아가 3월 장악한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주(州) 원자력 발전소 단지에 남은 우크라이나 국적 직원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미 CNN방송이 25일 보도했다.

포격과 단전 등으로 원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 터에 전문 인력이 떠나면서 안전이 더욱 위태로워졌다.

단일 단지로는 유럽 최대인 자포리자 원전의 직원수는 전쟁 이전 약 1만1천 명이었으나 전쟁 발발 이후 직원들이 떠나면서 일부만 남았다.

잔류 인원의 정확한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원전에 남아 근무 중인 다리아라는 가명의 우크라이나인 직원은 미국 CNN방송에 "지난 2주간 직원들이 미친 듯이 빠져나갔다"며 자신의 소속 부서엔 10∼15%의 직원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우크라이나인 직원 엘레나는 이미 떠났다. 그는 원전 인근 마을이 포격을 받자 탈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엘레나는 "너무 무서웠다"며 주둔 중인 러시아군 탓에 직원들이 공포에 질려 있다고 회상했다.

특히 기관총으로 무장한 러시아 군인들이 밤이 되면 종종 술에 취해 허공을 향해 총을 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가 원전을 떠나기 직전에도 (우크라이나인) 직원 1명이 살해됐다. 우리가 원전을 빠져나온 이유"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위원인 드미트로 루비네츠 의원은 러시아군이 원전을 차지한 이후 우크라이나인 직원 3명이 살해됐고 최소 26명이 정보 유출 혐의로 구금됐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기업 에네르고아톰의 페트로 코틴 대표도 CNN방송에 "매일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남은 직원들은 악조건에서도 계속 일하는 진짜 영웅"이라고 말했다.

남은 직원들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진 미지수다.

다리아는 직원들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원전에서 정말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닌 사람"이라며 "위험 신호나 문제·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들이 어떻게 판단을 내리고 대처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제사회는 현 상황이 얼마나 일촉즉발의 위기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sh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