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드라마로 큰 사랑을 받은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에도 빌런은 있었다. 바로 ‘권모술수’에서 ‘권고사직’으로 진화한 법무법인 한바다의 신입 변호사 권민우다. 세계 평화를 깨뜨리려 하는 진짜 악당들과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지만, 고작 회사에 자리잡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니 분노는 더하다.

그러나 덮어놓고 비난하기에는 우리네와 닮은 구석이 있다. 멀끔한 외모만 비현실적이지,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은 하이퍼리얼리즘이다. 부끄럼 한 점 없이 편견을 드러내는 장면도 어디선가 마주했을 법하다. 그래서 밉지만 설득력이 있다.

배우 주종혁(31)은 이러한 인물을 실감나게 표현해 매회 시청자들의 과몰입을 끌어냈다. 캐릭터의 성 ‘권’이 들어간 나쁜 말은 죄다 그의 별명이 된 모양새다. 최근 서울 중구 스포츠서울 사옥에서 만난 그는 “스스로 연기하면서 ‘진짜 심하다. 욕 많이 먹겠다’ 했다. ‘권모술수’야 이제 익숙하다. 근데 주종혁을 욕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내 별명이 그런 거면 인생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텐데 매우 만족하고 있다”며 웃었다.

캐주얼한 옷을 입고 온 본체(인물을 연기한 배우)는 놀랍도록 수더분한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말간 얼굴에 정중하지만 친숙한 말투, 친구들 중에 가장 잘생긴 친구를 만난 듯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현시점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답지 않아 신선했다. 지난달 25일 영화 ‘비상선언’ VIP 시사회에서 환호받으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32년 동안 보지 못했던 내 표정을 봤다. 그렇게 떨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 환호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내가 손흥민 선수가 된 줄 알았다. 하하. 최근 ‘헌트’ VIP 시사회도 갔는데 이정재 선배님, 정우성 선배님 사이에 껴서 사진을 찍는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연예인들 아니냐. 지금 인터뷰를 한다는 것 자체도 생소하고 신기하다.”

시청률 0.9%(이하 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한 작품은 자체 최고 기록 17.5%로 마무리됐다. 숫자만 놓고 봐도 대단한 성적이지만, 신생 채널 ENA 편성이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성공으로 평가받는다. 사돈의 팔촌까지 연락올 만한 신드롬급 인기였다. “그간 TV 드라마를 많이 안 해서 시청률에 대한 감이 없었다. ‘많이 보면 오르는 것 아닌가’ 단순히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대단한 거구나’라고 실감하게 됐다. 훈련소에 3일 같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DM(다이렉트 메시지)을 정말 많이 받는다.”

의도치 않은 양궁선수 안산의 지원사격도 있었다. 옹졸한 권민우를 보다못해 SNS에 “권모술수 너 그렇게 살지 마”, “뒤통수 조심해 권모술수 너 70m 앞에 서 있지 마” 등 글을 올린 것. 여기에 ‘양세찬 닮은꼴’이라는 반응까지 더해지며 배역 자체가 큰 화제를 모으게 됐다. 주종혁은 “너무 감사한 분이다. 화살을 맞고 싶을 정도로 감사하다. 트윗을 써주셔서 진짜 감사했다. 양세찬 씨께도 감사하다.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봐도 너무 닮았다. 신기했다”고 말했다.

자타공인 ‘분노유발자’였지만 극 초반에는 오히려 편견이 없는 캐릭터로 언급됐다. 우영우(박은빈 분)의 장애보다 천재성에 초점을 두고 그를 견제한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연기자 자신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고 한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고 연기하진 않았다. 사실 그 반응이 신기했다. 나를 이렇게 좋게 봐주니까 5회가 안 나오면 좋겠더라. 하하. 나도 착하게 나오고 싶었다. 우영우와 권민우의 케미스트리도 좋아해 주셨고, 그런 부분이 대본에도 있었다. 민우의 인간적인 느낌이 보일 수 있겠구나 했다.”

다만 권민우를 입체적인 인물로 그리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방송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법정 리액션까지 신경 썼다. “권민우라는 캐릭터가 다채롭게 보였으면 했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방구뽕(구교환 분)이 마지막으로 법정에 서서 아이들과 교감할 때 권민우가 살짝 웃는다. 민우로서도 되게 감동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대본에는 없었다. 나만 아는 거였는데 알아준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우영우’는 배우 개인의 연기력은 물론, 출연진의 합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진짜 친구로 거듭난 이들의 케미스트리가 한몫했다. “오디오가 안 빌 정도였다. 8개월 동안 빈 적이 없다. 다들 너무 재밌다. 나는 리액션 담당이었다. 치고 들어가고 싶은데 그들의 레벨까지 못 미쳤다. 연기할 때도 너무 많이 배웠다. 박은빈 배우는 ‘이런 사람이 주인공을 하구나’ 했다. 내 또래인데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강)기영 형은 센스가 있으시다. 어떻게 해야 그 신이 풍부해지는지 아신다. (하)윤경이도 어떤 역할을 맡아도 누구와 붙어도 잘 받아줄 수 있는 배우인 것 같다. (강)태오는 정말 준비도 고민도 많이 한다. 잘 맞는 부분이 많다. 메시지앱으로 보고 싶다고 질척대기도 한다.”

‘우영우’의 성공을 차치하더라도 주종혁의 발견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카카오M 액터스 오디션에서 700대 1 경쟁률을 뚫은 신예다. “내 인생의 기적이었다. 준비는 열심히 했지만 (1등이)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다. 나이도 있으니까 당연히 안 될 줄 알았다. 그래도 독립영화를 하던 중이었고 연기가 너무 재밌었다. 평가받고 싶었던 게 크다. 그러다 보니까 편하게 했다. 그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이러한 이력을 들으면 어릴 적부터 배우지망생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호텔을 경영하는 것이 꿈인 유학생이었다. 군 입대를 위해 한국에 돌아왔고, 크루즈 승무원이 되고 싶어서 바텐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손님으로 PD를 만나면서 배우의 길이 열렸다. “자주 오던 PD 형님이랑 친해졌는데 홍보 영상을 찍어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 당시에는 연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2주간 찍어보니 힘든데 재밌더라. 그렇게 독립영화에도 도전했고 지금까지 하게 됐다.”

배우로 데뷔하기에 적지 않은 20대 중반이었지만 조급함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의 선택을 항상 믿고 지지해준 부모님의 영향도 컸다. “부모님이 단 한 번도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대신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월세만 내면 됐지’ 하면서 돈에 큰 욕심이 없었다.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어서 재밌었다. 성격도 낙천적인 편이다. 성격을 바꿔볼까도 했는데 안 되더라. 권민우처럼 누굴 짓밟고, 이렇지 못하다. ‘다 동료니까 으쌰으쌰하자’ 마인드다. 이렇게 타고나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 일에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스타덤에 올랐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오디션을 보고 있다는 그는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을 외치며 연기에만 욕심을 부리겠다고 했다. “‘우영우’가 잘돼서 내가 보인 거다. 항상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고, 앞으로도 그러려고 한다. 지금도 오디션을 보고 있다. ‘권모술수’같은 새 별명을 또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유쾌한 배우로 남고 싶다. 많은 선배님들의 장점을 흡수해서 나만의 길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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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BH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