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공화당이 메디케어 없애려해" 주장에 공화 의원들 '야유'

트럼프 겨냥 "전임자가 부채 가장 많이 키워…200년 적자의 25% 차지"

우크라대사·총격범 막은 시민 등 초청…지정 생존자는 노동장관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 저녁(현지시간) 1시간 13분가량 진행한 국정연설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을 향해 협치를 강조하면서도 공화당의 일부 정책을 직접 공격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이날 연설에서 공화당과 대립하는 첨예한 현안인 부채 한도 상향 문제를 부채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면서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소환해 공화당의 반발을 샀다.

그는 '트럼프'라는 이름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임자가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국가 채무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미국 200년 역사 동안 쌓인 채무의 거의 25%가 직전 행정부에서 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부 공화당 의원이 항의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사실이다. 확인해봐라"고 받아쳤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이 한도 상향을 조건으로 정부 지출 축소를 요구한다면서 "일부 공화당은 메디케어와 사회보장제도의 일몰제를 원한다"고 말한 대목에서 다수 공화당 의원이 야유하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일몰제는 이 두 제도를 의회가 주기적으로 갱신하지 않으면 폐기하는 것으로 공화당 일각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긴 했지만, 다수 공화당이 부정적이며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두 제도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일부 공화당"을 거론하며 이같이 주장하자 공화당 강경파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하면서 "거짓말쟁이!"라고 외쳤다.

여러 공화당 의원이 "아니다!"라고 소리쳤고, 매카시 의장이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웃으면서 "우리 모두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는 논외로 하는 것에 동의하네"라며 메디케어가 생명줄인 어르신들을 위해 합의하자고 말했다.

그제야 매카시 의장을 포함한 공화당 의원들이 기립박수로 화답하며 긴장이 해소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연설하는 동안 의장석에는 매카시 하원의장과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나란히 했다.

작년 첫 국정연설 때는 해리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이 자리했으나 민주당이 작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를 공화당에 뺏긴 탓이다.

이처럼 달라진 역학 구도를 의식한 듯 바이든 대통령은 매카시 의장에 대한 축하 인사로 연설을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장의 명성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지만, 당신과 함께 일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에 전방위 공세를 예고해온 매카시 의장과 협치하면 그의 강성 이미지가 누그러질 수 있는 상황을 농담처럼 이야기한 것이다. 언론에 배포한 연설문에는 없는 즉석 발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해리스 부통령은 수시로 기립해 박수를 보냈으나 매카시 하원의장은 몇 차례를 제외하곤 거의 일어서지 않아 대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경쟁과 관련해 언급하면서 "시진핑과 자리를 바꾸고 싶어하는 세계 지도자가 있느냐. 한 명이라도 대봐라"라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등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에 이어 올해 국정연설에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은 작년에 8차례에 걸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는 등 모두 41차례에 걸쳐 70여발의 탄도 및 순항미사일을 발사하고, 7차 핵실험 준비까지 마치며 도발의 강도를 높였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관심끌기를 철저히 무시하는 듯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연설에선 한국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작년의 경우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에워싼 민주주의 국가들의 '단합된 힘'을 강조하면서 한국도 그 중 한 국가로 직접 거명했었다.

백악관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도 연설의 주요메시지와 관련한 인사를 특별 손님으로 초청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중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우크라이나대사에게 일어서달라고 한 뒤 "우리는 얼마나 오래 걸리든 우크라이나에 함께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고, 대사는 오른손을 가슴에 얹어 감사를 표했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의 남편으로 작년 10월 자택에 침입한 괴한의 공격을 당한 폴 펠로시도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폴이 당한 것과 같은 정치 폭력은 미국에 설 자리가 없다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극단적인 정쟁을 중단하자고 호소했다.

또 경찰의 폭행으로 숨진 타이어 니콜스의 어머니와 양부, 로스앤젤레스 댄스 교습소 총기 난사범을 막은 브랜던 차이도 초청됐고,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도중 이들을 호명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차이의 용감한 행동을 소개하고서 의회가 공격용 총기를 금지하자고 촉구했다.

이밖에 아일랜드 록밴드 U2의 리드싱어로 에이즈와 빈곤 퇴치를 위해 활동해온 보노, 홀로코스트 생존자, 멕시코 이주민, 노동조합원, 낙태 시술을 제때 받지 못해 숨질뻔한 여성,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딸을 잃은 여성 등이 특별 초청됐다.

반면에 공화당 소속인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은 로야 라흐마니 초대 주미 아프가니스탄 대사를 초청해 지난 2021년 8월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난맥상을 부각시켰고, 엘리스 스터파닉 하원 공화당 콘퍼런스 의장은 지역구 보안관을 초청해 범죄율 증가 문제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한편, 올해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임명된 '지정 생존자'(designated survivor)로는 마티 월시 노동부장관이 지명됐다.

미국은 상·하원 의원 전원은 물론이며 행정부 및 군 지도부, 사법부 주요인사들이 참석하는 국정연설 때 테러 등 불상사가 발생해 정부가 마비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각료 중에서 한 명을 '지정 생존자'로 지명하는 전통이 있다.

이에 따라 월시 장관은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의회와 떨어진 안전한 장소에 머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blueke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