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하다 도망친 짐꾼, 한국영상 본 청소년도 총살"…여성·장애인 인권유린 심각

전담 조직까지 만들어 한국 영상물 단속…국군포로는 별도 관리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이상현 기자 = 북한에서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나 공개처형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주민들의 생명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것으로 정부의 북한이탈주민 면담 결과 파악됐다.

임신부와 청소년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당사자 동의 없는 생체실험까지 자행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국군포로와 납북자, 이산가족들도 감시와 통제, 차별에 시달린다는 증언도 나왔다.

통일부가 2017∼2022년 탈북한 탈북민 508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해 30일 공개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는 이처럼 심각한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과 열악한 북한 주민의 인권 실태가 고스란히 담겼다.

통일부는 31일 북한인권보고서를 공식 발간할 예정으로, 보고서는 2018년부터 매년 작성됐지만 일반에 그 내용이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 "탈북하다 사살…도망가다 붙잡힌 수감자 공개처형"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국경지역에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결 처형하는 사례들이 지속해 수집됐다.

2019년 북중 국경지대에서 밀수 현장에 동원된 한 짐꾼은 절도를 하다 발각돼 경비초소에 억류됐다.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중국으로 도망가려던 이 짐꾼은 보위원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됐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2020년 이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국경봉쇄 지역에 출입할 경우 사전경고 없이 발견 즉시 사살한다"는 방침에 따라 봉쇄지역에 출입한 사람이 실제로 사살된 경우도 있었다.

교화소에서 도주하다 붙잡힌 수형자가 처형되는 것을 목격한 동료 재소자들의 증언들도 지속해서 나왔다.

함흥교화소에서는 2016과 2017년 연이어 도주 중 검거된 수형자에 대한 처형이 있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처형은 교화소장의 주도하에 총살 방식으로 이뤄졌다.

도주한 수감자의 목을 밧줄로 묶어 정문 꼭대기에 매달아 총을 3발 쏜 뒤 시체를 땅에 내려놓고 수형자들에게 돌을 던지게 한 사례도 있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위부가 관리하는 구금소 등에서는 2014년 동성애를 이유로 남성 피구금자가, 2013년에는 성매매를 이유로 여성 피구금자가 비밀 처형됐다는 진술도 나왔다.

◇ "종교·한국 영상물 시청으로도 사형"…청소년·임신부도 예외 아냐

살인 등 강력범죄뿐 아니라 마약거래,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 종교·미신행위 등의 이유로 사형이 집행되는 경우도 많았다.

한 탈북민은 "2018년 평성시에서 18명에 대한 공개재판이 있었다"며 "그중 1명이 성경을 소지하고 기독교를 전파한 행위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공개 총살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2019년 평양에서 비밀리에 지하교회를 운영했다는 혐의로 단체 운영자 5명이 공개 처형되고 나머지는 관리소나 교화소로 보내졌다는 진술도 나왔다.

2020년 양강도에서는 한 남성이 중국에서 한국 영상물을 유입해 주민들에게 유포한 행위로 공개 총살됐고, 2018년에는 하이힐, 화장품 등 한국제품을 몰래 팔다 체포된 사람들이 역시 공개 총살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2017년 사리원시에서는 여성 7명이 조직적인 성매매를 한 이유로 총살되는 것을 직접 봤다는 증언도 있었다.

청소년과 임신한 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5년도에는 원산시에서 16∼17세 청소년 6명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고 아편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총살됐다.

2017년에는 집에서 춤추는 한 여성의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됐다고 한다. 이 여성은 당시 임신 6개월이었는데,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동작이 문제가 돼 공개 처형됐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2014년에는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여성이 구금시설에서 낳은 아기를 중국 아이란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계호원(교도관)이 살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북한에서 공개처형을 봤다는 이런 증언은 2020년까지 매년 수집됐다.

북한에서 총살은 처형대상자를 기둥에 묶은 후 머리, 가슴, 다리에 3발씩 총 9발을 발사하는 방식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 국군포로 별도 관리·'韓영상물 단속' 전담조직도

국군포로·납북자, 이산가족들도 심한 감시와 통제, 차별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은 국군포로를 '43호'로 지칭해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국군포로와 가족들은 진학, 직장, 군 입대 등 모든 분야에서 차별받으며 탄광 노동자인 아버지 직업을 대물림하는 경우도 많았다. 납북자들 역시 다수가 광산 노동에 투입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북한 내 생존 국군포로와 전후 납북자는 각각 500여명과 516명으로 추정된다.

이산가족에 대한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상봉행사를 통해 남측 가족과 만난 뒤 자녀들에게까지 감시와 차별이 생겼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감시와 통제도 일상화됐다. 주 1회 생활총화 참여를 강요받고 가택수색, 숙박검열, 휴대전화 검열, 통화 감청 등도 이뤄지고 있다.

특히 '109연합지휘부'란 전담조직까지 만들어 한국 영상물 등 주민들의 외부 정보 접촉을 수시로 단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 여성은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구금시설에서 소지품을 검사한다며 나체 검사를 하는가 하면 여성의 질 내부까지 직접 확인하고 남성 계호원에 의한 자궁 검사까지 자행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장애인의 경우 산골에 '난쟁이 마을'을 만들어 다른 주민과 격리하는 등 거주지 이전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것으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총 11곳이며, 현재 운영되는 시설은 평안남도 개천시의 14호·18호, 함경북도 화성군의 16호와 청진시의 25호, 함경남도 요덕군의 15호 등 5곳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공개처형이나 비밀처형이 이뤄지고 수용자들은 광산 등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생체실험이 당사자 동의 없이 실시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생체실험은 주로 83호 병원 또는 83호 관리소로 불리는 곳에서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나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뤄졌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j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