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보다 강한' 헤즈볼라, 레바논 국경서 '제2의 전선' 만드나

"개입 원했으면 기습공격 참전했을 것"vs"美 개입하면 이란에 득 될 것 없어"

"이스라엘 반응 보며 움직일 수도…결정권은 하메네이 손에"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지난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무력 충돌에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도 가담하면서 일촉즉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신(新)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이란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의 참전 여부가 확전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그들의 또 다른 '추종자'인 헤즈볼라에 이스라엘 북쪽에서 '제2의 전선'을 만들도록 지시할 것이냐는 또다른 전략적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 보도했다.

앞서 WSJ은 이란이 하마스와 지난 8월부터 이스라엘 공격을 계획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를 논의하는 회의에는 이란혁명수비대와 이란이 지원하는 하마스, 헤즈볼라 등 4개 무장단체 대표가 참석했다고 한다.

이란과 헤즈볼라는 하마스의 공격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1983년 창설된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 정파다. 1975∼1990년 장기 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에 맞서 저항 운동을 한다는 명분으로 무장을 해제하지 않고 레바논 정부군과 맞먹는 병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등 서방은 이들을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주말새 이스라엘과 '제한적인' 교전을 벌였다.

8일 헤즈볼라는 골란고원 내 이스라엘 점령지를 향해 로켓과 박격포를 쏜 뒤 배후를 자처했다. 골란고원은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분쟁 지역으로, 2006년 34일간의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

이튿날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국경을 넘어오는 무장 세력들을 사살하고 헤즈볼라 초소 여러 곳을 공격했다.

WSJ은 이스라엘 전차 부대가 레바논 국경으로 돌진하는 동안에도 헤즈볼라는 상대적으로 자제된 모습을 보였다면서도, 결국엔 의도치 않은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훨씬 강력한 적이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공군 기지와 보병부대를 겨냥할 수 있는 정밀 유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일단 헤즈볼라의 개입은 이스라엘이 레바논뿐만 아니라 이란까지 타격할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크지는 않아 보인다. 확전 시 미국이 더 깊이 개입할 수 있어 현 단계에서는 이란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WSJ은 진단했다.

텔아비브대 이얄 지세르 교수는 "이란은 항상 마지막 레바논인과 팔레스타인인을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그러나 특히 광범위한 지역에서 전쟁으로 이란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 미국이 개입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전력을 전진 배치하며 이란과 헤즈볼라의 추가 개입을 견제했다.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과 전함 5척을 동지중해로 옮기고, 역내 F-35 등 전투기 증강에 착수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이를 "역내 억지 노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헤즈볼라를 향해 "(분쟁에 가담하기 전) 두 번 생각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물밑에서 외교적 노력도 이뤄졌다. WSJ은 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 지난 주말 미 국무부는 헤즈볼라가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 않도록 설득할 것을 레바논 정부에 촉구했다고 전했다. 또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경우 미국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한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레바논은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으로, 정부는 헤즈볼라에 영향력이 별로 없다. 레바논엔 거의 1년간 대통령 자리도 비어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에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이스라엘과의 또 다른 전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 전문가들은 만약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계획했다면, 애초 하마스와 동시에 공격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보고 있다. 기습 공격에 따른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또는 우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을 지켜보자는 계산일 수도 있다. 이 경우 민간인 사상자를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이로 인한 대중의 분노가 확산한 후에 전쟁에 뛰어드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 하버드대 벨퍼 센터 중동 이니셔티브의 무함마드 알리야 선임 연구원은 "이란이 앞으로도 이 카드를 쓸 수 있다면 왜 지금 사용하겠는가. 지금 당장은 확전의 결정권은 분명 하메네이(이란 최고 지도자)의 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 후 레바논은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또 다른 전쟁을 벌인다면 레바논은 더 큰 인도주의 위기를 겪을 수 있고, 헤즈볼라는 내부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민간인 살상으로 인한 분노는 이스라엘을 향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이집트,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와 평화조약을 맺었고 사우디아라비아와는 관계 정상화를 추진 중이었다. 역내 여론이 악화할 경우 이러한 외교적 노력까지 그르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스라엘 내에서는 강력한 보복 조치를 선언하며 전방위 공격을 예고했다.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 부보좌관 척 프레일리히는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에 기고한 글에서 가자 지구 전체를 정복하고 하마스를 무너뜨리는 것을 거론하며 "그렇게 하면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하지 않을 경우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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