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저축·소비·투자·GDP에 영향 미미…뒤늦게 수요 타격할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진정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여기에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이 끼친 영향은 크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간) 연준의 공격적인 기준 금리 인상 이후 인플레이션이 내려갔지만,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연준 조치와 인플레이션 하락 간에 분명한 관련성이 없다면서 이같이 평가했다.

인플레이션이 내려온 것은 대부분 코로나19에 따른 영향에서 벗어나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온 덕분이며 이는 연준의 통제범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또 단순화해서 말하면 인플레이션이 저절로 내려온 만큼 연준 덕분이 아니며, 연준 정책은 기껏해야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는 것을 막는 정도였다는 것이 WSJ의 진단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지난해 6월 고점 9.1%에서 줄곧 내려와 6월 3.0%를 찍었고, 9월에는 3.7%를 기록한 바 있다.

연준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0.25%였던 기준금리 상단을 공격적으로 인상해 지난 7월 22년 만에 최고인 5.5%까지 끌어올렸고 동결을 이어가고 있다.

WSJ은 연준의 금리 인상은 이론상 수요를 끌어내리고 고용·경제활동의 둔화를 통해 물가 압력을 낮춘다고 설명했다.

또 고금리는 저축을 늘리고 대출을 줄이는 한편 수요·투자를 줄인다면서, 실제와 비교해 항목별로 연준 정책의 기여분을 점수로 매겼다.

WSJ은 5점 만점을 기준으로 저축·소비·투자·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은 0점으로 봤고 고용(1점)·대출(2점)·주택시장(4점) 순으로 낮은 점수를 줬다.

그 근거는 9월 개인 저축률이 3.4%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처음 이뤄졌던 지난해 3월과 같고, 가계 소비는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강력히 증가해왔다는 것이다.

또 민간의 비거주용 실질 투자는 정부 보조금에 따른 공장 투자 증가 등에 힘입어 최근까지만 해도 매 분기 늘어났고, 3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4.9%(연율)로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았다는 점도 거론됐다.

실업률은 여전히 완전고용을 뜻하는 4% 아래에 머물고 있고, 전체 융자 규모(금융 부문 제외)는 증가 속도가 둔화됐지만 여전히 오르고 있다.

그나마 주택시장의 경우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으로 신규 모기지 발급 건수가 1995년 이후 최저로 떨어진 상태다.

WSJ은 금리 인상으로 취약한 가계·기업이 타격을 받았지만, 대부분 모기지가 30년 만기 고정금리인 점 등을 감안할 때 다수의 가계·기업이 금리 인상의 대가를 직접적으로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의 인플레이션 진정은 주로 상품·노동 공급 개선 덕분이라는 이코노미스트들의 견해가 나온다면서, 연준이 노동 참여나 이민 등 공급 측면에서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PGIM 채권의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다립 싱은 "올해 인플레이션 진전의 대부분은 공급 측면의 개선 덕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연준이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면 약달러로 수입 물가 상승과 제조업 경기 강세가 발생하고, 주택시장과 소비 지표도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올리비에 블랑샤르 연구원은 기대 인플레이션을 2%에 가깝게 고정한 연준의 신뢰성에 공이 있다면서 "고정 효과가 작다면 더 높고 물리치기 어려운 인플레이션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WSJ은 "금리가 인플레이션 하락을 초래하지 않았다고 해서 큰 영향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 경제에 큰 위험"이라면서 "평소보다 더 시차를 두고 올 수 있고,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끝난 뒤 수요를 타격할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bs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