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헌법이 있는데 미국의 각 주정부는 왜 또 주헌법을 만드는 것일까.
메릴랜드주는 모두 75페이지, 4만 7천여자에 달하는 주헌법(Constitution of Maryland)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은 거의 모두 연방헌법과 겹친다. 주헌법 서두 권리선언(Declaration of Rights)의 제1조(Article 1)를 보면 "모든 정부의 권리는 주민에서 나오고, 주민의 권리는 양도할 수 없으며 빼앗길 수 없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연방헌법의 서두와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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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정부가 자체적인 헌법을 제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각 주가 국가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연방법과의 충돌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연방헌법은 주정부에 화폐 발행권, 군대 창설권, 외교관계 수립 및 비준권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조세권과 사법권 등은 모두 행사할 수 있다.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경우 권력과 집행의무는 연방정부에 귀속된다. 따라서 자치적인 별도의 헌법을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주법은 연방법의 보완재 역할을 하고 있다. 연방수정 헌법 10조는 주 법이 다른 영역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혀 놓고 있다. 헌법상 연방에 귀속되지 않았거나, 헌법으로 금지되지 않은 권한은 각 주나 국민에게 속하는데, 이 권한을 명확히 하기 위해 별도의 주법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연방법과의 충돌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이밖에 모든 주는 주헌법 외에도 의회 입법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 법률 대부분은 연방의회나 연방정부가 제정한 법률과 유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동, 장애인, 민법 관련 조항 등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제반 법률 거의 모두 연방법과 겹쳐지는데도 별도의 법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연방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주법이 얼마든지 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권한쟁의의 대상이 된다. 연방헌법 6조는 주정부가 헌법이나 연방법률에 저촉되는 법률을 제정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거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 문제로 남부와 북부가 심각하게 대립했는데, 궁극적인 문제는 주가 연방을 탈퇴할 권리를 가지느냐 아니면 갖지 못하느냐는 문제였다. 결국 북군의 승리로 인해 어떤 주 정부도 적절한 법적 절차 없이 개인의 생명이나 자유 혹은 재산을 박탈할 수 없게 됐으며 재판 과정에서 그 누구에게서도 법의 보호를 동일하게 받을 권리를 박탈할 수 없게 됐다.
즉 노예를 사람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에서 엄청난 충돌이 빚어졌던 것이다. 이 헌법 수정 조항으로 인해 연방 정부는 주법을 무효화할 수 있는 보다 확실한 근거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연방헌법 제6조는 '연방법률 우위의 원칙(supremacy clause)'을 규정하고 있다. 연방법과 주법간 충돌이 있거나 주법이 연방법이 의도하는 정책사항의 달성에 방해가 되는 경우 연방법이 우선이며, 연방법이 최고 법원이기 때문에 주법은 무효가 된다는 규정이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애리조나주의 반이민법을 들 수 있다. 연방정부는 불체자에 대한 무작위 검문과 체포가 연방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애리조나주의 반이민법은 무력화됐다.
미국은 남북전쟁을 전후해 연방정부의 권력이 주정부 권력을 현시적으로 압도하기 시작했다. 연방정부와 사법부는 연방헌법과 법률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을 가함으로써, 주정부의 입지를 더욱 좁혀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도는 여전히 주정부의 관할이다. 각 주정부는 연방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지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위한 방편으로, 연방정부보다 더 자세하게 더 폭넓게 주민의 권리와 자유, 혹은 특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법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점점 위축되어가는 주정부의 권한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연방법의 위세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경제와 민사 거래 행위와 관련된 대부분의 분쟁을 처리한다. 대부분의 형사 소송이나 상해와 관련된 민사 소송도 연방법보다는 주법의 인기가 더 놓다. 특히 결혼이나 이혼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가족법의 경우 주법의 권위는 절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