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 29일, 로드니 킹을 집단 폭행한 백인 경찰 네 명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LA는 곧바로 폭동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시 전역이 불타올랐고, 그중에서도 한인타운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경찰은 부유한 백인 지역을 우선 방어했고, 한인타운은 사실상 방치됐다. 당시 약 2,300여 개 한인 업소가 약탈과 방화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한인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1세대 이민자들과, 정체성을 고민하던 2세들이 함께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폭동이 끝난 지 사흘 뒤인 5월 2일, 10만 명 이상이 참가한 평화 대행진이 열렸다. 그날의 행진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다짐이자, 인종 간 화합을 향한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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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이 지난 지금, 한인사회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매년 4월이면 다양한 기념행사와 토론회, 장학사업이 열리곤 했다. 최근까지도 LA 한인회와 흑인 커뮤니티는 'Days of Dialogue'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차세대 한인 고등학생들과 흑인 학생들이 함께 4·29를 주제로 토론하고, 서로의 시선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또 장학금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커뮤니티를 이해하고 연대하려는 시도도 계속됐다.
이런 노력들은 단지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한인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계기였다. 그리고 그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33주년을 맞은 4월 29일, 한인사회는 유난히 조용했다. 별다른 기념행사도, 공동 토론회도 열리지 않았다. 한인사회 일부에서는 "점점 4·29가 잊히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역사는 잊혀질 때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한인사회의 지난 상처와 그 속에서 피어난 연대의 이야기가 단순한 과거의 한 장면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지금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